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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여정

모래알1 2004. 11. 18. 15:30

    아직 끝나지 않은 여정
    내 삶의 시작이 그랬듯 내 삶의 마지막도 알지 못한다.

    오늘이, 내가 지상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라면

    지금 이 순간, 내가 보고 있는 모든 것,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

    그리고 내 곁의 사람들, 모두가 내 목숨처럼 소중한 존재들이리라.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꿈과 희망이 이루어지는 미지의 그곳을 향해 가고 있다.

    나그네처럼 왔다가는 이 순례의 여정에서

    물 없는 사막을 만나 타는 목마름을 겪기도 했으며

    황량한 광야에 혼자 버려진 것 같은 외로움과

    희망이 깨진 것 같은 두려움에 떨기도 했다.


    시대의 그릇된 사조나 풍조를 만났을 때는

    낯선 도시에 밤에 도착한 것처럼 혼란스럽고 당황하기도 했으며

    지친 몸을 쉬어가고 싶게 하는 육감을 자극하는 것들 앞에서는

    마치 그곳이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목적지인 것처럼 착각하여

    여정을 포기하고 안주하고 싶은 충동을 느낄 때도 있었다.


    때로는 저잣거리에서 처럼 「내가 가진 것이 최고」라고

    「내가 가진 것이 진품」이라며 외쳐대는 사람들을 볼 때는

    얼굴을 찌푸리기도 하고, 아니라고 손을 가로 젓기도 했다.

    때로는 그들을 향해 짐짓 고상한척하며

    더럽다고 침을 뱉으며 독화살을 쏘아 올리기도 했다.


    내가 쏘아 올린 독화살은 누구의 가슴에 꽂혔을까?

    독화살을 맞은 이는 해독약을 구하기는 할 수 있을까?

    아니면 평생을 그렇게 가슴에 상처를 안고

    나를 원망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내가 아름다운 꽃씨라고 뿌렸던 수많은 씨앗들은

    어디에서 언제쯤 꽃이 필까?

    내가 뿌린 것이 꽃씨가 아닌 가시나무 씨앗은 아니었을까?

    내가 보고, 느끼고, 판단한 것이 과연 옳은 것이었을까?


    스쳐가듯 만난 이 수많은 사람들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나의 인생여정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왜? 만나지 않았어도 됐을 그들이, 내 여정 안으로 들어 온 걸까?


    그러나 이 여정은 그리 험난한 길만은 아니었다.

    때로는 얘기가 잘 통하는 좋은 길동무를 만나

    지루하지 않은 날도 있었고

    때로는 무더운 여름날

    무성한 나무그늘 아래서 맞는 시원한 바람처럼

    상쾌한 이를 만나기도 했으며

    좋아하는 사람과 차를 마시며 감미로운 음악을 들을 때처럼

    포근한 이를 만나기도 했다.


    나는 이 여정을 통해 더 부서지고 깨어졌지만

    더 넓은 이해력과 더 넓은 가슴으로 세상을 안을 수 있게 되었으며

    더 튼튼한 다리와 굳건한 정신으로 나의 길을 갈 수 있으리라.


    옷깃을 여미게 하는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느껴지는 이 밤에

    그동안 함께 했던

    내게 소중한 이름들을 떠올리며 마지막 사랑의 말을 전해 본다.

    ‘사랑한다’고, 그리고 ‘고마웠다’고….

    ‘내가 있어서 당신이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있어서 내가 존재했노라’고.

    ‘나를 ‘나’이게 도와준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드린다‘고.


    여전히 의문투성이인 이 여정은 언제 끝날 것인가?

    나는 지금 어디쯤 서 있는 걸까?

    이 길로 가는 것이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길이 맞기는 하는 걸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은 아닐까?


    시간은 덧없이 흘러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데

    수평선너머로 몸을 숨기는 저 태양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누렇게 영글은 황금들녘을 바라보면

    그님께서 추수하러 오실 날이 멀지 않은 것 같은데

    그님을 맞을 채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님이 오시면 그동안의 나의 노고를 알아나 주실까?


    이제 길을 떠나야지, 너무 늦기 전에. 그님을 맞으러….

    그님께서 오심을 알려주는 별빛이 보이면 그 빛을 따라가야지.

    그리고 그님을 뵈오면 그님 발아래 엎드려 말해야지.


    당신을 위해 모든 좋은 것을 다 마다하고

    당신을 사랑하기에 열성을 다했다고 생각했던 모든 일들이

    실은 당신을 위함이 아니라

    나를 위한 당신의 배려였음을 이제야 알았다고 고백해야지.


    당신의 그 지극한 배려는

    오늘의 나를 존재하게 하는데 꼭 필요한 것이었다고.

    한낱 티끌 같은 나를 위한 당신의 지극한 사랑에

    감사하며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고.

    온 마음으로 당신만을 사랑하겠노라고.


    오늘도 님을 기다리며…2003 대림절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