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만물은 나름대로 자기 고유의 모양과 색깔을 지니고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사물의 모양이나 색깔을 보고 그것이 어디에 속하는지
또 어떤 나무의 열매인지, 혹은 그 열매가 상품인지 불량품인지를 구별한다.
우리는 지난번 대선 때도, 또 현 정치인들에게서도
서로 자기는 ‘누구’와 같지 않다는 색깔 논쟁을 하는 것을 보아 오고 있다.
이렇게 어느 개인이든 집단이든 나름대로 고유의 색깔을 드러낸다.
그러면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색깔은 과연 어떤 색일까?
우리의 색깔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색깔과 확연하게 구별이 되는 그런 색일까?
유감스럽게도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경우에 전혀 구별이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물론 교회 내에서는 모두가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깔을 낸다.
그러나 성당 문만 나서면 카멜레온 같이 색깔을 바꾸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어물전에 금방 들어가면 역한 비린내에 금방은 얼굴을 찌푸리지만
곧 비린내에 익숙해져서 아무렇지도 않듯이 우리도 그렇지 않나 싶다.
처음에는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며 망설이다가
나중에는 ‘에이, 이정도야 괜찮겠지’ ‘남들도 다 하는데 뭐’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시켜가면서...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너무나도 똑같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면서
그들과 똑같이 술 취하고, 밤새워 화투치고, 진탕 먹고 마시고 즐기지는 않는지?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곧 음행, 추행, 방탕, 우상숭배, 마술
원수 맺는 것,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것, 그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갈라디아 5,19-21)
그러나 우리는 어느 곳에 있든지
'하느님의 백성'이며'하늘나라의 시민' 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는 확연하게 구별돼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우리의 색깔은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서도 확연히 드러나는 '그런 색'이어야 한다.
어두움을 살라버리는 '빛'이어야 한다.
우리가 정말 '살아계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답게 살지 못한다면
죽은 니체의 망령이 되살아나서 ‘신은 죽었다’라고 또 망발을 할지도 모른다.
우리가 정말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고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그리고 절제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나더러 주여, 주여 한다고 다 하늘나라에 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만일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그런 소금은 아무데도 쓸데없어
밖에 내버려 사람들에게 짓밟힐 따름이다”라고 말씀하시는 주님께서
돌들을 가지고도 아브라함의 후손을 만드실 수 있는 분께서
그런 가지들을 모두 잘라내시어 불 속에 던지시고 새로운 가지를 접붙이실지도 모른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는 진리가 있을 따름인데
여러분이 그의 가르침을 그대로 듣고 배웠다면
옛 생활을 청산하고 정욕에 말려들어 썩어져 가는 낡은 인간성을 벗어 버리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 사람으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새 사람은 올바르고 진리의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에페소 4,21-24)
우리의 가치 기준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무슨 생각을 하던지, 무슨 말을 하던지, 어떤 행동을 하던지
'그리스도인'답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우리의 행실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해야 하지 않을까?
뚜렷한 가치 기준도 없이 윤리와 도덕이 실종되고
온갖 부조리와 폭력과 무질서가 판을 치는 이 세상에
우리 모두 '하늘나라'를 확장하는데 앞장 서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특권이자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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